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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소개
기생수의 연상호 감독은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 최초 칸 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된 장편 데뷔작 〈돼지의 왕〉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사이비〉로 애니메이션 감독의 입지를 다지고 한국형 좀비 장르물 〈부산행〉을 성공시키며 실사 영화로도 커리어를 인정받은 감독입니다. 영화 〈염력〉 〈반도〉, 넷플릭스 〈지옥〉 〈정이〉 등에서 독창적인 세계관을 보여주며 ‘연니버스’(연상호 유니버스)를 구축했습니다. 영화감독뿐 아니라 만화가 각본가로도 활약 중입니다. 연 감독이 펼쳐 놓은 세상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원작과 유사합니다. 살아가는 방식도, 생각도, 목적도 다른 생명체들이 결국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의지하는 것 그것이 공존입니다. 이 과정은 사람과 이상 생물의 동거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더욱이 뇌에서 뻗어가는 촉수는 완벽한 VFX(특수시각효과)로 자연스럽게 묘사돼 판타지 설정에도 높은 몰입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공개 후 넷플릭스 글로벌 톱 10 시리즈 영어 비영어 통합 1위에 올랐습니다
만화 기생수 이야기
웹툰이 나오기 전 만화방에서 만화책을 빌려 보던 시절. 그 시절에 만화 좀 본다는 사람 중 기생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가 고등학생 신이치에게 기생하며 기묘한 동거를 하는데 오른손에 기생하는 이 생명체에 신이치는 미기(오른쪽)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미기는 때로 괴이하면서도 강한 전투력으로 신이치를 보호합니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미기는 인간이 서로를 보듬고 도우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人間)’이 사람 사이의 존재임을 실감하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발달된 기술력과 함께 기발한 상상력과 깊이 있는 메시지의 K-콘텐츠가 웹툰 영화 드라마 등에 전방위로 넘쳐 나지만 만화책을 즐겨보던 시절 일본 만화가 준 충격은 대단했습니다. 그동안 만나보지 못한 상상의 세계에 푹 빠져들며 인간의 탐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아슬아슬한 재미를 만끽했죠. 하나의 세계관을 깊이 있게 담아내는 표현력은 감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연상호 감독도 그 매력에 푹 빠져 살았고 그중에서도 기생수는 그의 최애 만화였습니다. 그는 상상했습니다. 일본에서 나타난 그 기생 생물이 한국에도 존재한다면 어떨까? 누적 판매 2500만 부 이상을 기록한 이와아키 히토시의 만화 기생수에 연상호 감독의 상상력이 더해져 마침내 넷플릭스 시리즈 〈기생수: 더 그레이〉로 구현되었습니다. 인간을 숙주로 머리를 차지하려던 기생 생물은 한국의 외로운 청년 수인(전소니)에게 불시착해 미처 머리를 완전히 갖지 못한 채 뇌의 반쪽에만 기생하게 됩니다. 그사이 사회 곳곳에 등장한 기생 생물은 새진 교회 권혁주(이현균) 목사를 중심으로 세를 확장해 가고, 이들을 처단하기 위해 경찰에는 ‘더 그레이’라는 조직이 결성됩니다. 기생 생물에게 남편을 잃은 준경(이정현)이 더 그레이를 이끌고, 위기에 처한 수인을 강우(구교환)가 돕습니다.
감독 인터뷰
장르물의 대가 연상호 감독은 기생수를 제일 좋아하는 만화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생수는 세계관이 있는 만화예요. 실제로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떨까 이래저래 상상해봤어요. 그 결과 이런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작품의 철학인 공존을 어떻게 해석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공존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나오지 않아요. 한국 사회의 여러 조직을 통해 폐해를 보여주려 했을 뿐이에요. 인간은 혼자가 아니라고. 공존은 기생이냐, 의지냐의 미묘한 차이가 있어요. 권혁주 목사의 ‘인간은 기생하며 산다’는 대사가 수인의 ‘인간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대사로 바뀌는 과정이 나오는데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이라고 답하였습니다. 기생 생물이 머리를 돌리며 싸우는 장면을 온라인에서는 한국식 ‘상모 돌리기’로 표현하고 있는데 완성도 높은 CG가 뒷받침되어 어색하지 않게 잘 표현되었다는 부분에 대해서 연 감독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 부산행을 촬영할 때 보조 출연자에게 좀비 연기를 주문했어요. 그러면 대부분이 두 손을 앞으로 뻗고 ‘어어-’ 하며 소리를 냈죠. 좀 더 다른 게 필요해 팔을 꺾거나 고개를 돌리도록 다시 교육했어요. 영화가 개봉하고 초등학생들이 머리 위로 손을 꺾으며 좀비 흉내를 내는 걸 봤는데 ‘이건 됐다’ 싶었어요. 위험이 따를지라도 무난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기생수: 더 그레이〉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만 CG를 구현할 때는 생각지 못한 어려움이 있더군요. 원작에서 머리카락이 촉수로 변하는 장면이 있는데 어떻게 담아도 이질감이 상당하겠더라고요. 일본판 영화에도 이 과정이 나오지 않은 이유가 있던 거죠. 최대한 이질감이 생기지 않게, 변하는 장면마다 주인공의 긴 머리에 바람을 쐬어주며 촬영했어요.” 영화는 조용한 수인의 캐릭터 때문에 이야기가 자칫 정적으로 흘러갈 수 있는데, 준경(이정현)과 강우(구교환)가 등장하면서 입체감이 살고 인물의 균형이 이루어집니다. “준경은 인간 조직을 상징해요. 전투력이 높지 않은데도 기생 생물을 쫓는 준경이 무서운 건 그가 속한 더 그레이 조직 덕분이죠. 남편의 몸을 차지한 기생생물의 존재가 갈등 요소인데 준경이 그를 고문하며 ‘사냥개’로 사용하는 건 가짜 광기라는 가면으로 고통을 숨기는 거예요. 남편 몸체가 죽었을 때 준경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요. 수인과 하이디를 만나면서 가면도 천천히 벗어지죠. 강우는 우울하고 차가운 수인과 하이디의 메신저 역할을 합니다. 원작에서는 신이치와 미기가 티키 타카에 가까운 소통을 하는데 수인과 하이디는 직접 소통을 못 하니까 제삼자가 필요한 거예요. 이 또한 공존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여러 영화에서 독창적인 세계관을 보여준 덕분에 ‘연니버스’(연상호 유니버스)라는 표현이 뒤따르는데 부담은 없냐는 질문에 “〈부산행〉 이후 그런 말이 생긴 것 같은데 벗어나려고 합니다. 이전과 다른, 새로운 걸 하고 싶어요. 지금 촬영 중인 작품은 CG 하나 없이 카메라 효과로만 찍고 있어요. 이게 잘돼야 다른 기회가 주어질 텐데, 안되면 했던 걸 다시 하게 되겠죠. 그런데 또 〈부산행〉 같은 것만 선택받더군요.” 이번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일본 배우 스다 마사키가 등장합니다. 아마 다음 편을 기약한 걸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기대가 됩니다.